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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14.

    by. happylab153

    목차

      르네상스 음악 이론가들의 조성 개념

      1. 서론 

      르네상스 시대는 예술, 철학, 과학, 종교 등 모든 문화 영역에서 중세의 전통적 질서로부터 점진적으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새로운 인식 틀을 구축해 나가던 시기였다. 음악 역시 이 변화의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르네상스 음악은 외형적으로는 중세의 전례 양식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점차 독자적인 미적 감각과 구조적 자율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작곡가들은 보다 풍부한 감정 표현과 음향 대비를 통해, 음악을 단지 신의 질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이성을 통합하는 예술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이러한 음악 양식의 변화는 이론적 기반의 개편을 요구하게 되었고, 기존의 8 선법 체계(modal system)는 점차 실제 음악적 실천을 설명하는 데에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세 선법은 특정 음정 구조와 음역 범위를 중심으로 음악을 분류하고 해석하였으나, 15~16세기의 음악은 훨씬 유연하고 다양한 구조를 지녔기 때문에, 더 이상 이론적으로 기존 모드 체계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활동한 르네상스 후기의 음악 이론가들은 새로운 음악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이론 체계를 제시하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하인리히 글라레아누스(Heinrich Glareanus)와 지롤라모 줄 리토(Gioseffo Zarlino)는 중세적 전통과 르네상스적 새로움 사이에서 음악 이론을 가교적으로 정립한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 두 이론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음조의 중심성 또는 조성 개념의 싹을 제시했으며, 이후 바로크와 근대 음악 이론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글라레아누스는 실제 작곡 관행과의 불일치를 지적하며 기존의 8선법 체계를 보완해 12 선법 체계(Dodecachordon)를 제안했고, 그 안에서 아이오니아(Ionian)와 에올리아(Aeolian)라는 새로운 음계 중심의 선법을 도입하였다. 이는 훗날 장조·단조의 원형이 되었으며, 모드에서 조성으로의 이론적 전환의 시발점이 되었다. 반면 졸리토는 보다 수학적이고 비례 중심의 미학을 통해 음악 구조를 해석하며, 화성적 조화와 음정 간 기능의 체계화에 집중하였다. 그는 음악을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반영한 예술'로 보았고, 이 안에서 조화의 규칙을 엄격하게 기술하고자 했다.

      따라서 본 보고서는 이 두 이론가의 이론을 중심으로, 르네상스 시대 음악 이론이 조성 개념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은 장조·단조 체계가 완전히 정립되기 전, 중세 모드 개념의 틀 안에서 새로운 구조적 사고를 제안한 이론가들로, 그들의 사유는 현대 조성 개념의 역사적 전사(前史)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 본론 

      2-1. 중세 교회선법 체계의 한계

      서양 중세 음악은 오랫동안 그레고리오 성가의 정형화된 체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교회는 8개의 정격 및 변격 선법 체계를 표준으로 삼았다. 이는 각각 도리아, 프리지어, 리디아, 믹솔리디아 등 고대 그리스의 이름을 차용한 구조였으며, 이 체계를 통해 음악은 정신적 질서와 신의 조화를 반영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작곡가들은 각 선법이 지닌 감정적 성격(affect)을 고려해 음악을 작곡하거나 배치했으며, 이는 전례 음악의 구조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음악 양식은 점차 복잡하고 세속적인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15세기 중엽부터 작곡가들은 보다 자유로운 음정 배열과 선율 전개, 다성적 구조 안에서의 종지 방식을 탐색하면서, 기존의 모드 체계로 설명하기 어려운 음악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심음이 정형화된 모드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중심음 감각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는 후일 ‘조성(tonality)’으로 발전하는 전조였다.

      예를 들어 조스캥 데 프레(Josquin des Prez)의 일부 미사곡이나 모테트에서는 기존 선법 체계에서 벗어난 음중심적 구성이 발견되며, 악곡 전체의 종지 구조가 특정 음(예: 도 또는 라)에 집중되기도 했다. 이러한 음악들은 중세적 선법 이론으로는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고, 음악 이론가들은 실제 작곡 관행과 이론 체계 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해석과 수정을 시도하게 되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후기 이론가들은 중세 이론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보다 현실적인 작곡 관행을 설명하고 체계화하려는 노력을 병행하게 되었으며, 이는 이론의 확장, 음계 구조의 재정의, 기능화된 음 중심의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2-2. 글라레아누스의 도데카코르돈과 선법 확장

      하인리히 글라레아누스는 스위스 출신 인문주의 음악 이론가로, 1547년에 발표한 저서 도데카코르돈(Dodecachordon)에서 중세의 8 선법 체계를 12 선법으로 확장하였다. 이 책의 제목은 12개의 현(또는 선법)이라는 뜻으로, 기존 선법 체계에 아이오니아(Ionian)와 에올리아(Aeolian)를 포함한 4개의 새로운 선법을 추가했다. 그가 제안한 아이오니아는 지금의 장조(C major), 에올리아는 단조(A minor)의 원형이며, 이는 근대 조성 체계에 직접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이론적 혁신이었다.

      글라레아누스는 음악의 현실적 흐름을 관찰한 뒤, 기존 8선법 체계가 조스캥, 오케겜, 빌라르트 등의 작곡가들이 실제로 작곡한 음악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이 새로운 선법들이 단지 이론적 제안이 아니라, 이미 음악가들이 실천하고 있던 방식임을 강조하면서, 이론과 실천의 일치를 추구하는 인문주의적 관점을 보여주었다.

      그의 모드 체계는 여전히 중세적 모드의 틀 안에 있었지만, 중심음, 음역, 종지(cadence), 진행성 등 새로운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선법 개념을 보다 동적이고 구조적으로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아이오니아는 도 중심의 음계 구조로, 에올리아는 라 중심의 구조로 해석되며, 이는 후에 장조/단조 체계의 기초 개념으로 작용한다. 글라레아누스는 음의 중심성과 전례적 기능이 분리되는 지점에서 새로운 음악 이론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이는 르네상스 후기 이론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그는 실제 음악 분석을 이론 제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실용주의적 접근을 취했으며, 이는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학문 전반에 미친 영향력과도 연결된다.

      2-3. 졸리토의 하모니의 원리와 조화의 미학

      지롤라모 졸리토(Gioseffo Zarlino)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에서 작곡가이자 음악 이론가로 활동한 인물로, 1558년 『하모니의 원리(Le istitutioni harmoniche)』를 출판했다. 이 책은 당대 가장 체계적이고 영향력 있는 음악 이론서로 평가되며, 음악의 수학적 조화와 구조를 중심으로 체계를 구성하였다. 졸리토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과 피타고라스적 수학관을 결합하여, 음악이란 수와 비례로 이루어진 질서의 표현이며, 인간의 감성과 이성 모두를 조화롭게 만족시키는 예술이라 보았다.

      그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기여는 삼화음(triad) 개념의 제시음정 간의 정확한 수학적 비례 관계 정립이다. 그는 특히 순정율(Just Intonation)을 제안하여, 각 음정이 가진 이상적인 비례 값을 수치화했고, 이를 통해 음정의 감각과 구조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예컨대, 장3도는 5:4, 완전 5도는 3:2의 비례로 구성되며, 이는 모든 하모니가 수학적 규칙에 기반해 구성된다는 그의 사유를 보여준다.

      졸리토는 또한 중심음(tenor), 주음, 도미난트 등의 용어를 활용해, 음악 내에서 기능적으로 중심을 형성하는 음의 개념을 제시하였으며, 이는 후대 조성 이론에서의 중심음 사고(tonal center)로 이어지는 사유적 기반이 되었다. 그는 종지를 해석할 때에도 기능적 관점에서 음간 관계를 중심으로 한 방향성과 안정성에 주목하였으며, 이는 바로크 시대 종지 이론(cadential function)의 선행개념으로 작용한다.

      그의 이론은 당대 작곡 교육의 기준서로 사용되었으며, 륄리, 몬테베르디, 갈릴레이 같은 음악가와 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는 이론과 실제를 조화롭게 결합한 문헌을 남김으로써, 르네상스 음악이 단순 감각의 예술이 아니라 수학적·철학적 질서 위에 세워진 고등 예술임을 주장한 인물로 평가된다.

      2-4. 조성 개념의 이론적 싹: 모드에서 음조 중심으로

      글라레아누스와 졸리토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르네상스 시대 음악의 음조 중심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글라레아누스는 기존 8 선법 체계에 새로운 선법을 추가함으로써 이론적 구조 자체를 확장했고, 졸리토는 음정과 화성의 내부적 질서를 체계화하여 음 간 관계 중심의 음악 해석을 제시하였다. 이 두 시도는 각각 모드 체계의 구조적 수정화성적 기능의 자율성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조성 개념의 초석이 된다.

      이들의 이론은 중세 모드 체계가 중심음을 기반으로 하되, 기능적 구분이 약하고 구조적 방향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완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글라레아누스의 확장 모드는 현실 음악과의 괴리를 좁히기 위한 작곡자 중심의 모드 재해석이었고, 졸리토의 이론은 감성과 논리를 아우르며 화성 중심의 근대 음악 이론으로 연결될 수 있는 철학적 바탕을 제시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두 이론은 음악이 모드라는 역사적 전통에서 벗어나, 보다 자율적이고 중심 지향적인 구조로 나아갈 수 있는 사유의 기반을 제공했으며, 이후 바로크 시대의 통조성 음악과 기능화성 체계로의 이행을 이끄는 밑거름이 되었다.

      3. 결론 

      르네상스 시대는 음악사에서 구조적 사고의 틀이 변화하던 전환기였다. 중세의 모드 체계는 오랫동안 음악을 규율하는 핵심 이론이었지만, 르네상스 중 후기 작곡가들이 실제로 창작하던 음악은 이 전통적 체계를 넘어서는 감각적 다양성과 구조적 복잡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과 이론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고 이를 조율하려 한 이론가들 중, 하인리히 글라레아누스와 지롤라모 졸리토는 조성 개념의 태동을 이끈 핵심 인물들이었다.

      글라레아누스는 도데카코르돈을 통해 아이오니아(Ionian)와 에올리아(Aeolian)라는 새로운 선법을 도입함으로써, 음악사에서 최초로 장조와 단조의 근간을 공식적으로 개념화한 이론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12 선법 체계는 단지 선법 수를 늘린 데 그치지 않고, 음악을 중심음 구조로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이는 선법 중심 사고에서 음조 중심 사고로 이행하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으며, 실제 작곡 실천과의 일치를 추구한 현실 중심적 이론의 전형이었다.

      반면 졸리토는 하모니의 원리에서 음정, 화성, 종지의 수학적 비례 관계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음악이 자연 질서와 수학적 조화를 반영하는 예술임을 주장하였다. 그는 특정 음 간의 기능 관계를 체계화하여 조화의 구조적 성격을 드러냈고, 이를 통해 조성 감각의 내면적 논리를 밝히려 했다. 졸리토는 중심음, 도미난트, 종지 등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후대 기능화성 이론의 출발점이 되는 사유의 기반을 놓았다. 그의 이론은 단순히 작곡 규칙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음악을 철학적 질서로 재해석한 기념비적 문헌이었다.

      이 두 인물의 이론은 서로 접근 방식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중세적 모드 체계의 제약을 인식하고, 새로운 음조 감각과 구조 개념을 이론 안에 포섭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의 작업은 음악 이론이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는 인식, 즉 이론의 실천성과 경험 중심성을 보여주는 르네상스적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은 이후 바로크 시대의 장조-단조 조성 체계의 정립과도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며, 17~18세기 기능화성 체계 이론의 전사로 기능하게 된다.

      현대 음악사와 이론사는 종종 ‘조성의 시작’을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들과 이론가들에게 돌리곤 하지만, 실제로 그 사유적 전조는 르네상스 말기의 이론가들에 의해 체계화되었다는 점에서 글라레아누스와 졸리토의 위치는 역사적 중심축에 놓여야 마땅하다. 이들은 새로운 음악적 감각과 경험을 이해하기 위한 구조적 언어와 사유의 틀을 제공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조성 중심 음악을 이론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 주었다.

      결론적으로, 글라레아누스와 졸리토는 조성 개념의 완전한 정립 이전, 과도기적 이론 체계를 통해 음악의 변화를 인식하고 정리한 선각자들이었다. 그들의 이론은 단지 과거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 다가올 음악 세계를 예견하고 준비한 이론적 선언이자, 음악사 속 진화의 흐름을 가시화한 지적 성취로 기억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