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역사

모차르트 오페라에 나타난 계급 비판과 인간성

happylab153 2025. 4. 28. 11:48

18세기 후반 유럽은 계몽주의 사상이 퍼져나가며 인간 이성과 평등, 자유에 대한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중심에 있던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음악을 통해 단순한 오락이 아닌 사회적 메시지와 인간 이해를 담아내려 했다. 특히 그의 오페라 작품들에서는 당시의 계급 구조를 비판하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이 글에서는 모차르트 오페라 속에 나타난 계급 비판의 양상과, 그가 음악을 통해 전달한 인간성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피가로의 결혼 : 하인의 반란, 귀족의 풍자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1786)'은 18세기 유럽의 계급 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가장 대담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 작가 보마르셰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며, 당시로서는 금기시되던 하인의 권리 주장과 귀족의 위선 고발이라는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초연 전부터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는 이 작품을 음악화하면서, 귀족사회에 대한 풍자와 함께 하인의 인간성, 지성, 정의감을 부각시킴으로써 계몽주의적 사상과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작품의 중심인물인 피가로는 백작의 시종이자 주인공으로, 예리한 통찰력과 유머, 그리고 정의감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귀족의 권력 남용, 특히 알마비바 백작이 피가로의 약혼녀 수잔나를 유혹하려는 음모에 맞서면서 신분을 뛰어넘는 도덕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대표한다. 반면 백작은 겉으로는 고상하고 품위 있어 보이나, 실제로는 자기중심적이고 쾌락주의적이며 위선을 일삼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인물 대조는 전통적 권위와 질서에 대한 풍자로 기능하며, 귀족이 무조건적으로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기존의 인식에 균열을 가한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하인의 말과 행동이 단순한 희극적 장치가 아니라 지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의 언어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피가로는 “Se vuol ballare, signor contino”라는 아리아에서 백작을 은근히 조롱하며 그를 통제하려는 전략을 예고한다. 이 아리아는 단순한 오락적 장면이 아니라, 하인이 귀족에게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존재임을 선언하는 일종의 ‘음악적 반란’이다. 이는 당시 청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사회적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되었다.

또한 여성 등장인물의 역할 역시 계급 비판과 인간성 고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녀 수잔나는 매우 지혜롭고 당당하며, 백작부인과 함께 여성 연대를 통해 권력 구조를 전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여성 하인이 귀족 여성과 함께 협력하여 남성 귀족의 부당함에 맞선다는 구도는 성별과 계급 모두를 초월하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는 18세기 계몽주의가 주장한 인간의 평등과 이성의 힘을 예술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이 모든 내용을 음악적으로도 뒷받침한다. 하인들의 아리아는 밝고 경쾌하며 리드미컬하고, 선율적 자유로움이 두드러진다. 반면 백작의 음악은 때로는 무겁고 위압적이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조성과 불균형한 구조를 통해 권위의 허약함과 내면의 동요를 드러낸다. 즉, 음악 자체가 인물의 계급과 심리를 반영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소리’로 구현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피가로의 결혼』*은 단순한 희극 오페라가 아니라, 시대의 모순과 계급 구조의 허상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음악적 드라마였다. 모차르트는 음악을 통해 하인의 인간성을 고양하고, 귀족의 위선을 드러내며, 사회의 정의와 평등을 유머와 아름다움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이는 음악이 단순히 감상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변화를 꿈꾸는 사상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2. 돈 조반니 : 권력과 성욕의 충돌, 인간의 도덕성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 1787)'는 고전적인 희극과 비극, 도덕극의 요소가 혼합된 독특한 형식의 작품으로, 단순한 여성 유혹자(Don Juan) 이야기를 넘어서 당대 귀족 계층의 권력 남용, 성적 방종, 그리고 도덕적 타락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주인공의 몰락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어떤 본성을 지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사회적 계급 구조 속의 모순을 폭로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돈 조반니는 귀족 계급에 속한 인물로서, 사회적으로는 권위와 세련됨을 지닌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제한의 권력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악용하는 인물이다. 그는 하녀, 귀족 여성, 농촌 처녀 등 다양한 계층의 여성을 유혹하거나 강제로 관계를 시도하며,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의 성욕은 단순한 개인적 본능이 아니라, 계급적 권력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며, 이는 곧 당시 사회의 도덕적 위선을 상징한다.

모차르트는 이 캐릭터를 단순한 악당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돈 조반니를 매혹적인 인물로 설정하면서, 청중이 어느 정도 동정과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 이는 그를 더욱 위험하고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시킨다. 그는 권위의 탈을 쓰고 자유를 외치며, 자신만의 윤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타인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폭력으로 치닫고, 결국 그는 사회와 도덕, 심지어는 죽음의 심판에서도 도망치지 못한다. 이러한 구도는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인간상에 대한 경고로 읽히며, 자유와 무책임 사이의 균형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돈 조반니의 파멸은 단순한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인간의 오만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음악적 심판이다. 이 장면에서 모차르트는 불협화음, 어두운 조성, 강렬한 리듬과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죽음이라는 절대적 정의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과 죄의 무게를 그려낸다. 이는 음악을 통해 도덕적 질서와 보편적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이며, 계급적 면죄부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작품 속 레포렐로(하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돈 조반니의 하인으로서 그의 행동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인물이며, 때로는 주인을 풍자하거나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 인물은 단순한 희극적 장치가 아니라, 도덕적 양심과 대중의 시선을 대변하는 인물로 기능하며, 귀족의 부도덕함에 대한 경계심을 음악과 대사로 표현한다. 레포렐로의 ‘카탈로그 아리아’는 조반니의 수많은 정복을 유쾌하게 열거하지만, 그 안에는 귀족의 성적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음을 풍자하는 시대 비판적 언어가 숨어 있다.

더 나아가, '돈 조반니'는 계급을 넘어선 보편적 도덕성과 인간성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모차르트는 작품 전체를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 책임, 죄와 용서의 문제를 제기하며, 예술이 단지 오락을 위한 것이 아닌 사회와 인간에 대한 사유를 담아야 할 도구임을 보여주었다. 그의 음악은 듣기 좋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사유를 유도하는 고차원의 예술 언어였던 것이다.

결국  '돈 조반니' 는 권력과 성욕, 도덕과 죄의 문제를 중심으로, 계급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 본성의 복합성을 예리하게 드러낸 걸작이다. 모차르트는 이 작품을 통해 귀족 계층의 도덕적 몰락을 고발하는 동시에, 모든 인간이 스스로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메시지를 음악으로 전달하였다. 이처럼 그는 오페라를 단지 극적인 이야기의 전달이 아니라, 인간과 시대를 통찰하는 깊은 철학적 장르로 끌어올렸다.

3. 마술피리 : 이상 사회로의 여정, 인간 본성의 승화

모차르트의 후기 오페라  '마술피리(Die Zauberflöte, 1791)'는 외형적으로는 독일 전통의 징슈필(Singspiel) 양식을 따른 대중적인 동화 오페라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당대의 계몽주의 사상, 인간성의 본질, 그리고 사회 질서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가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성숙과 공동체적 조화로 향하는 이상 사회의 가능성을 음악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주인공 타미노와 파미나는 지혜와 덕의 시련을 통과하며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여정을 걷는다. 이들은 외적 아름다움이나 지위가 아닌, 내면의 진실성과 인격적 성숙을 통해 영적 성장을 이룬다. 이는 계몽주의가 추구한 이성, 도덕, 교육의 이상과 일치하며, 오페라 속의 ‘시련’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도덕적 통과 의례(ritual)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은 본능과 감정을 지니되, 그것을 극복하고 이성에 따라 행동할 때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인간관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오페라에서 선과 악의 경계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밤의 여왕’이 정의롭고, 자라스트로는 억압적 지도자처럼 묘사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선과 악의 위치는 역전된다. 이를 통해 모차르트는 도덕 판단이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성찰과 공동체적 가치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윤리관이었으며, 인간성의 보편성과 내면의 성장 가능성을 긍정하는 계몽주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하층민인 파파게노 역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작용한다. 그는 타미노처럼 이상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솔직한 감정과 인간적인 유머, 평범함 속의 진실성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파파게노는 단순한 희극적 하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도덕과 진리의 길에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존재이다. 이는 귀족이나 지배 계층만이 아니라, 하층민 역시 동등한 인간적 가치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모차르트의 오페라 전반에 흐르는 인간 평등에 대한 믿음을 잘 보여준다.

음악적으로도 이 작품은 계급과 성별, 문화적 경계를 넘는 보편적 언어를 활용한다. 타미노와 파미나의 아리아는 고상한 선율과 구조 속에 고통과 감정을 담아내며, 파파게노의 아리아는 유쾌하면서도 깊은 인간적 공감을 유발하는 리듬과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계급과 상관없이 모든 인물이 각자의 음악적 언어로 자신의 인간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의도된 것이며, 모차르트가 얼마나 철학적으로 음악을 접근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마술피리' 는 프리메이 슨 적 상징성이 곳곳에 숨어 있는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자라스트로의 공동체는 지혜, 형제애, 관용, 자기 성찰을 중시하는 비밀 결사 조직의 이상을 반영하며, 이는 단순히 조직의 이념을 넘어 개인의 내면과 사회 전체의 성숙을 추구하는 이상 공동체 모델로 기능한다. 이 또한 모차르트가 단지 오페라 작곡가에 그치지 않고, 예술을 통해 시대를 바꾸고자 했던 철학적 예술가였음을 방증한다.

결과적으로  '마술피리'는 동화적 외피를 두른 계몽주의 사상의 종합적 표현이며,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신뢰하며, 그 변화 가능성을 긍정하는 작품이다. 귀족과 하인, 남성과 여성, 고귀한 이성과 본능적 감정이 서로 충돌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통해, 모차르트는 차별 없는 이상 사회의 청사진을 음악으로 제시한다. 이는 단순한 유희의 오페라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도덕적, 인간적 성장을 말하는 예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결론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단지 아름다운 음악과 극적인 이야기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다. 그의 오페라는 18세기 유럽 사회의 계급 구조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낸 철학적이고 시대비판적인 예술이었다.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를 비롯한 주요 작품 속에는 귀족과 하인, 남성과 여성, 도덕과 욕망,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섬세하게 녹아 있다. 모차르트는 이러한 대립을 단순한 갈등이 아닌 통찰과 변화, 성장의 기회로 제시하며, 오페라를  계몽의 장(場)으로 확장시켰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그는 하인의 지성과 정의감을 통해 귀족 권위의 허상을 풍자했고, 『돈 조반니』에서는 권력을 남용하는 귀족의 몰락을 통해 보편적 도덕성과 인간 책임의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마술피리』에서는 하층민과 이상주의자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이상 사회의 가능성과 인간 내면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세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와 인물을 다루지만, 공통적으로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진리를 향한 여정을 걸을 수 있는 존재라는 모차르트의 인간관을 공유한다.

이러한 접근은 단지 극적인 효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 구조와 통념을 흔들고, 예술이 사회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의 깊이를 확장한 것이었다. 모차르트는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무언의 저항과 고발, 그리고 치유의 메시지를 전했으며, 이는 단지 당시 관객에게 감동을 준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예술의 윤리적·사회적 기능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는 특정 계층의 입장을 고발하거나 대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본성의 복합성과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유지했으며, 이것이 모차르트 오페라의 가장 강력한 감동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속 인물들에게 귀족이든 하인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각자의 목소리와 감정, 인간성을 부여하며, 어느 누구도 단순한 도구로 소비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이로써 그는 예술을 통해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공감하고 통찰할 수 있는 공간, 즉 사유와 공감, 연대를 위한 장을 만들어냈다. 이는 계몽주의가 강조했던 이성과 인간 존엄성, 보편적 가치를 음악으로 구체화한 것이며, 고전 오페라가 단순한 궁정 예술을 넘어 공공의 철학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이다.

오늘날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이는 그의 음악이 단순히 감상적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고, 인간성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각 작품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예술이 어떻게 시대를 초월한 윤리와 철학을 담는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따라서 과거를 위한 음악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 그리고 미래를 향한 예술적 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