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역사

20세기 현대음악의 실험정신: 무조성, 전위음악, 전자음악의 등장

happylab153 2025. 5. 5. 10:43

1.  음악, 전통을 해체하다

20세기에 접어들며 인류는 과학, 철학, 정치, 예술의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겪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철학적 실존주의의 대두, 급속한 기술 발전과 도시화는 인간의 감각과 사고방식 자체를 변화시켰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미의 기준이나 형식에 만족하지 않았고, 새로운 시대를 표현할 새로운 언어를 찾아 나서게 된다.
음악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기존의 조성 중심의 체계, 형식 중심의 작곡 방식, 선율 중심의 청취 경험은 더 이상 현대인의 불안과 혼돈, 고독을 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음악은 이제 더 이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이 아니라, 의문을 제기하고 청중에게 사고를 요구하는 예술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 출발점이 바로 20세기 현대음악의 실험정신이다.

2. 무조성과 12음기법: 조성 체계의 해체

19세기말부터 조성 중심의 화성 체계는 점점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바그너, 말러, 드뷔시 등이 시도한 화성의 확장, 불협화음의 빈번한 사용은 점차 조성 중심 음악의 붕괴를 예고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는 조성을 완전히 배제한 무조 음악(atonal music)을 선언하고, 나아가 이를 체계화한 12 음기법(dodecaphony)을 고안한다.

12 음기법은 옥타브 안의 12개의 모든 반음(크로매틱)을 동등하게 취급하며, 어떤 음도 중심음(톤 중심)으로 간주하지 않는 작곡 방식이다. 작곡가는 12개의 음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한 음렬(tone row)을 만들고, 이 순서를 변형하거나 뒤집는 방식으로 작품 전체를 구성한다.
이 방법은 일종의 ‘조성에서의 해방’을 의미했고, 음악이 화성적 귀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갖출 수 있음을 제시했다. 쇤베르크와 함께 베르크(Alban Berg), 베베른(Anton Webern)으로 이어지는 제2빈 악파(Second Viennese School)는 이러한 기법을 발전시켜, 음악의 형식과 구조를 극도로 응축시키고 추상화시켰다.

이러한 무조성과 음렬기법은 당시 청중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오늘날 현대음악, 영화음악, 실험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적 사운드의 언어적 기반이 되었다. 이는 단지 ‘음악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음악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 ‘음악이란 무엇인가?’을 던지는 기점이었다.

3. 전위음악의 대두: 예측불가능성과 우연성의 미학

1950년대를 기점으로, 작곡가들은 더욱 급진적으로 음악 형식 자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전위음악(avant-garde music)이라 불리는 흐름은 단순한 새로운 양식의 창조가 아니라, 음악을 사회·문화적 실험의 장으로 확장시킨 예술운동이었다.

그 중심에는 존 케이지(John Cage)가 있다. 그는 무작위성과 우연성을 음악에 도입하며, 작곡가의 통제를 최소화하고 연주자와 청중의 개입을 유도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대표작 4분 33초(4’33”)는 연주자가 아무 음도 내지 않고 침묵하는 곡으로, 이 침묵 속에서 청중이 주변의 소리, 자신의 내면을 들으며 ‘무엇이 음악인가’를 스스로 정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는 음악을 ‘소리의 예술’에서 ‘경험의 예술’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전위음악은 또한 새로운 악기, 새로운 기보법, 새로운 청취 방식을 실험했다.

  • 그래픽 악보(graphic score)는 전통적인 5 선보 대신 시각적 기호나 그림을 사용해 연주자에게 해석의 자유를 준다.
  • 확률 음악(chance music)은 주사위 던지기나 동전 던지기 같은 우연적 행위를 통해 연주 내용을 결정하기도 한다.
  • 즉흥성과 수행성을 강조하며, 연주자 개인의 창의성과 상황적 해석을 음악의 본질로 끌어올린다.

전위음악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며, 무의미, 침묵, 반복, 해체 등 당시 철학과 예술 전반에서 논의되던 개념들을 적극적으로 음악 안에 들여왔다. 그 결과, 음악은 더 이상 ‘작곡가의 창조물’이 아닌, 청중과 연주자 모두가 완성하는 열린 예술로 변화했다.

4. 전자음악의 등장: 기계와 인간의 새로운 조화

20세기 중반 이후, 기술의 발전은 음악의 영역을 다시 한번 확장시켰다. 전자음악(electronic music)은 테이프, 신시사이저, 컴퓨터 등을 활용하여 사람이 직접 연주할 수 없는 소리, 구조, 질감을 창조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음색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음악의 정의 자체를 다시 쓰는 일이었다.

초기 전자음악은 독일의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프랑스의 피에르 셰페르(Pierre Schaeffer) 등의 작곡가에 의해 실험되었다.

  • 셰페르는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이라는 장르를 창안했는데, 이는 일상의 소리를 테이프에 녹음하고 변조하여 음악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 슈톡하우젠은 순수 전자음을 조합하여 기존 악기의 물리적 한계를 넘는 추상적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전자음악은 이후 신시사이저와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함께 폭발적으로 확산된다.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같은 앰비언트 음악가,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의 실험, 그리고 현대의 EDM, AI 작곡 시스템까지 전자음악은 더 이상 실험이 아닌 현실로 자리잡았다.

특히 전자음악은 공간성과 시간성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음악에 도입한다. 사운드가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스피커를 통해 공간 전체에 흩뿌려지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시간과 음색이 수학적으로 설계된다. 이는 기존 연주 중심 음악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청취 체험을 제공한다.

5. 해체에서 재구성으로, 음악의 미래를 열다

20세기 현대음악은 단지 기존 음악의 ‘진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음악이라는 예술 형식의 존재 조건을 근본적으로 되묻는 과정이었다. 조성이 해체되고, 작곡가의 권위가 사라지며, 전자기기가 창작의 주체가 되는 과정에서 음악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예술로 변모했다.

오늘날의 음악은 더 이상 특정한 양식이나 장르, 연주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무조성과 12 음기법은 여전히 클래식 작곡 수업에서 분석되며, 케이지의 전위음악은 현대 미술관에서 퍼포먼스로 재해석되고, 전자음악은 대중음악의 기반이 되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이는 20세기 실험정신의 직접적인 유산이다.

20세기 음악은 묻는다.

 

“음악이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는가?”
“음악은 어떻게 청중과 관계를 맺는가?”
“작곡이란 무엇이며, 예술은 어디서 시작되고 끝나는가?”

 

그 해답은 아직도 쓰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바로 그 실험 속에서, 음악은 여전히 살아 있다.